[독서 서평]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0(‘지대넓얕0’)(2020)

흥미롭게 읽었던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이하 ‘지대넓얕’)’ 1,2 편에 이어 후속작이 나왔다. ‘지대넓얕0’는 1,2 편에서 다룬 주제보다 더 앞선 시기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다른 책을 사러 온라인 서점을 보다가 목록에서 발견하고 비싼 가격임에도 고민없이 구매했다. 두께가 앞서 발간된 두 권의 책보다 훨씬 두꺼워서 흉기(?)로 쓰기 적당했다.

지대넓얕0
지대넓얕0

‘지대넓얕0’는 이전 1,2 권에서 다뤘던 역사, 경제, 윤리, 철학, 미학 등의 주제가 생기기 훨씬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다. 우주의 탄생부터 지구의 역사를 지나 고대의 위대한 사상가들의 생각이 어떻게 근대까지 이어져 왔는지를 말한다. 1,2 권에서는 대부분의 주제가 이원론을 기반으로 전개됐다. 그에 따라 한 주제도 두 갈래로 나눠서 설명했었다. 이 책은 일원론을 주제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전체를 관통하는 큰 줄기를 따라 작가가 하고싶은 말은 자아와 세계의 관계가 정립된 방법이다. 여러 고대 문명부터 찾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이어오는 흐름을 본다.

‘지대넓얕0’는 세계부터 시작된다. 세계 혹은 세상을 이야기 하려면 그 시작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약 138억년 전 우주의 탄생부터 책이 시작된다. 나는 고등학교 때 이후로 과학적인 주제는 제대로 배운 적이 없었다. 하지만 항상 과학 분야에 흥미를 갖고 있었다. 1장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에 읽은 적이 있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처럼 우주에 대한 나의 흥미를 자극해주기 충분한 주제였다. 특히, 빅뱅이 어떻게 시작했을 지에 대한 여러 가설이 흥미로웠다. 그 중 하나는 태초에 아무것도 없는 상태는 사실 아무것도 없는 상태가 아니며 ‘영원한 시공간 팽창(인플레이션)이 진행중이었다. 물질과 반물질의 쌍입자들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가 생성됐다를 반복하다가 어느순간 시공간의 급팽창과 만나게 되면 그 균형이 깨어지고 물질이 생성됐다는 가설이다. 대단히 흥미롭다. 이러한 과정에서 무한한 빅뱅이 발생하고 그것은 무한한 다중우주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가설일 뿐이고 밝혀내는 일은 머나먼 미래의 일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상상만 하는 것으로도 재미있다.

‘지대넓얕0’에서 우주의 탄생이후에 다루는 내용은 인류에 관한 이야기이다. 당연히 이에 앞서 우리 태양계와 지구의 탄생과 성장하는 내용도 나온다. 흔히 들어본 선캄브리아기와 그 이후에 속한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에 대한 이야기. 생명은 어떻게 탄생했을 지에 대한 이야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유기물은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무기물보다 복잡한 구조를 가진 물질이라면 모두가 유기물이라는 사실이다. 내 지식이 얼마나 얕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인류가 전 지구로 퍼진 과정과 고대 4대 문명의 탄생까지가 세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대넓얕0’의 다음 이야기는 자아에 대한 설명이다. 베다,도가, 불교, 철학, 기독교가 각 장을 맡고있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베다를 제외한 다른 장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씩은 들어봤다. 우리가 관심이 없어서 잘 모르고 있을 뿐이지 사실 베다는 구약 성경과 대등할 만큼 인류사에 큰 영향을 미친 문헌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나라에 교육받고 비슷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쉽게 접하기 어렵고 이질적으로 생각하기만 한다.

우리 중 대부분은 실재론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그러므로 지극히 이원론적인 사고를 하는 세계관을 갖고있다. 하지만 관념론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보자. 그러면 관념론도 실재론과 다르면서도 또 다른 입장에서는 옳은 개념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원론적인 사고방식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이 지구에서 절반에 가까운 사람은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진 베다를 배운 상태로 삶을 사는데 우리는 단지 이원론적인 세계관만 갖고 나머지 절반이 생각하는 바에 대해서 전혀 생각을 해보려하지 않는 것은 우물안 개구리처럼 너무나 안타깝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자신의 자아를 성찰하고 더 넓은 영역을 깨우치기 위해서는 일원론적인 사고를 시도하고 경험하기를 제안한다. 바로 작가의 의도다. 그렇기 때문에 베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책에서 빠져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이다.

베다는 고대 인도에서 널리 전파된 방대한 지식을 담고있는 경전이다. 베다안의 여러 경전에서 파생되어 나온 것이 힌두교나 불교등의 종교이다. 그들의 세계관은 세상이 순환한다는 가정이다. 불교의 윤회를 생각해보면 비슷한데 신들은 우주의 원리를 지배하고 서로 겨룸으로써 그 결과가 자연에 미치고, 그러한 자연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은 항상 자연이 질서있기를 희망하여 신과 인간들을 연결해줄 사제(브라만)를 통해 신에게 자신들의 희망대로 해주기를 희망했다. 여기서 인간이 신에게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달라고 요청하는데 필요한 것은 사제에게 주는 돈이므로 인간은 곧 스스로가 사제를 통해 신을 움직일 수 있다가 본다. 신->자연->인간->사제->신 으로 이어지는 이런 순환하는 세계관에서 인간은 단지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기서 이어지는 사제 계급이 신을 위한 의식 행위 등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그 안에서 우주의 원리를 깨달으려고 했다. 고대 인도인들은 이런식으로 자아와 세계는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무한한 우주와 이어지는 시작은 곧 자신의 내면부터라는 일원론적 세계관은 여기서 나온다. 그러므로 우리가 베다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곧 우리도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생각해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그 다음 ‘지대넓얕0’의 주제는 우리에 익숙한 도가,불교,철학,기독교의 사상에서 어떻게 일원론적 사고의 흐름이 이어졌는지를 다룬다. 도가에서는 도덕일치, 불교에서는 일체유심조, 철학에서는 칸트에서 출발한 관념론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유일하게 예외적으로 기독교에서는 신과 인간, 천국과 지옥 등의 이원론적인 사상이 이어져왔지만 그안에서도 14세기 활동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가 일원론적 해석으로 기독교 교리를 해석했다는 점을 짚어주고 있다.

긴 페이지를 통해 세계에 대해 생각해보고 그것과 자아의 관계에 대한 고대 사상가의 다양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우리에게 익숙한 이원론적 세계관이란 색안경을 잠시 벗고 일원론적인 세계관을 향해 모험을 해보자!’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도 사실 1,2 권을 통해 관념론이란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 굉장히 그럴듯 하구나!라는 생각만 하고 깊게 고민은 해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고나서 아주 조금은 더 깊이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먹게됐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일원론적인 세계관이 나의 내면이나 자아를 더 깊게 알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면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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